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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역사학 - 대한민국

by go1700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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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학 - 대한민국

 

1). 대한민국

 

세계 2차 대전 이후인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으나, 곧이어 한반도에 미군과 소련군이 남과 북에 각각 진주해 주둔함으로써 군정이 시작되었고, 이 기간에 좌우익 세력 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결국 1948년에 38선 이남에서 총선거가 실시된 후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수립되면서 남북이 분단되었다. 1950년 6월 25일에는 한국 전쟁을 거쳐 한반도 이남의 대한민국과 한반도 이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확실히 나뉘게 되었다.  광복 직후 한반도 내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등이 치안과 행정권을 담당하여 혼란한 해방정국 상황을 일시적으로 수습하였으나, 9월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정책과 포고령으로 불 인정되었고, 곧이어 한반도에는 군정기를 맞게 된다. 군정기 기간 좌∙우익 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하였고, 좌우합작운동 등이 추진되었으나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 트루먼 독트린이 계기가 되어 냉전이 시작되고, 계속되는 좌, 우익 세력의 대립으로 인해 남북 각각 단독정부 수립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남북이 분단되어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하였다. 한국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연합군의 승리와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영향으로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후 분단이 굳어지면서 각자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게 작용했다. 특히, 1950년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였고, 분단은 더욱 굳어지고 기반 시설은 대부분 초토화되어 남북한 사이 간의 상호 불신이 더욱 깊어 갔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깊은 후유증 속에, 1950년대에는 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으며 삼백산업의 발달로 전쟁의 참혹한 폐허의 상처를 딛고 경제를 복구해 나갔다. 이후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선출하여 자유당의 영구집권 음모로 발생한 3·15 부정 선거의 후유증으로 부정선거 개표와 재선거를 촉구하는 시위가 4·19 혁명으로 번지면서 자유당 정권은 붕괴하고 허전의 과도내각을 거쳐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정권 교체인 제2공화국은 집권당인 민주당의 구파, 신파 간 갈등으로 1년 만에 5·16 군사 정변으로 몰락하게 된다. 1960년대 이후에는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 계획 이래 경공업 및 경제개발계획 등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며, 197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 육성에 크게 기울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 수준을 추월하는 등 크게 발전해 나갔고, 1980년대에는 '3정 호황'으로 경제 안정기를 맞아 첨단산업이 발달하였다. 1997년 11월에 IMF로 경제위기 난을 겪기도 하였지만, 2001년 8월 IMF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광복 직후에 대한민국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커다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다. 또한, 4∙19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 수많은 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제5공화국까지 이어지던 1987년에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주의 정부가 새로 출범함으로써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점차 극복되었으며, 사회의 민주화도 꾸준히 이루어져 가고 있다. 광복 이후에는 학문 활동이 활발해지고 넓어지면서, 교육의 기회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가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가치관의 혼란과 전통문화의 위축 현상을 가져오기도 하였다는 점이 있다. 오늘날 민주화와 더불어 문화의 다양화가 촉진되고, 반도체 등 몇몇 과학 기술 분야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세기 말 찾아온 IMF 경제위기로 인해 경제가 급격히 악화하였으나, 미국의 원조지원과 그 국민의 뛰어난 단합력으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빠른 경제회복을 맞았다. 대한민국은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나, 높은 교육열과 학생들의 뛰어난 학습력 및 공부에 대한 의지로 인적 가치에 의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가진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배출된 수많은 인재가 대한민국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 역량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바이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국민들은 단합의 기회를 갖고, 그 이후 시민의식 수준이 더 높아지게 되었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는 대한민국의 저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편,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단연 교육의 힘만이 아니다. 현대 대한민국은 문화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은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그 종류도 세분되었다. 또한, 학습적인 교육에만 국한된 교육이 아닌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융합형 인재는 물론이고 음악, 미술, 체육 등에 능통한 예술 인재 또한 배출되고 있다. 이러한 예술 인재들은 대한민국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육이 다른 분야에 영향을 미친 예이다. 대한민국의 노래들은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아이돌 및 가수들은 해외로 나가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의 케이팝에 열광하며 엄청난 규모의 해외 팬까지 생겼다. 대한민국의 문화가 세계 각지로 전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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