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사항
수 많은 오타 있음. 문장력&필력 완전 딸림. 쓸데없는 말 많음. 은근히 지 자랑도 함.
그 밖의 많은 문제들 있습니다.

1. 나와 수영-1
제목을 '나와 물(WATER)'로 할까 하다가 '나와 수영'이 더 있어 보이길래.. 대략 9년쯤 전에 첫째 아들이 생기고 해운대에 와이프랑 드라이브 갔다가.. 해변가 어디쯤에 철학.사주 등을 봐주는 곳이 있어 호기심에 거금을 주고 우리가족 세명을 봤는데.. 거의 두당 2만원 정도 했다고 기억이 된다. 나는 한때? '기독교적 바탕(?)' 이라.. 완전히 호기심에.. 갓 태어난 우리 아들 사주를 보니 너무 좋다고 했다. 도대체 아기 이름을 누가 지었냐고 철학.사주 봐주시던 어르신께서 물으시길래.. 아버지 즉, 아기의 할아버지가 직접 작명하셨다고 하니.. 정말 통찰력? 있는 할아버지라고 하셨다. 뜬끔없이 결혼을 잘한다고 하셨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대략 30년후의 일인 결혼을 잘한다니.. 너무 난해했다. 또한 나한테는 '물의 사주' 라고 했고.. 와이프는 '나무의 사주'라고 했다. 물과 나무가 너무 잘맞다고.. 감사한 일이지만.. 6만원을 들인 것 치고는 좀.. 허접.. ^^. 아들이 커서 결혼을 잘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 또한 잘 된다는 말이고.. 부모가 잘 키운다는 말이겠지! 그러니 결혼을 잘하겠지.. 내 생각으론 철학과 사주는 왠지.. 해석의 영역 같다. 해석을 잘하자.. ^^
하여튼 물의 사주(?)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물을 진짜 좋아했다. 어릴때 물놀이나 목욕탕의 냉탕에서 열심히 놀지 않은 애들이 있겠나마는..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동네에 수영장이 없어 1년에 한번 부모님의 계모임에서 부곡하와이를 가는데.. 그날만 기다리던 기억도 나며.. 중.고등학교 때에는 부산 사직 수영장에 주말마다 버스타고 갔던 기억도 난다. 완전 어릴때 부산에서 살았는데, 초등학교 입학전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에 와서.. 당시는 엄청 촌이었지^^ 어머님는 교육문제로 부산에 계속 살려고 했는데.. 월남 파병후 군에서 제대하신 아버지의 직장문제로 인하여..^^ 물을 좋아해서인지 물에서 보다 자유자재로 놀기 위해 수영을 많이 배우고 싶어 했던것 같은데.. 중3때인가 고1때인가 이 도시에도 삶의 질향상과 취미.여가생활의 중요성을 깨달은 누군가의 투자로 처음 수영장이 생겼는데 아쉽게도 조금 멀리 있기에 접근성이 많이 떨어졌다. 가끔 놀러가기는 했지만.. 제대로 수영을 배울수가 없었다. 당시(고1) 나의 수영실력은 25m를 2-3번 왕복하면 에너지가 0%가 되는 아주 저질이었다. 그래도 친구들중에서는 사직수영장 50m를 안쉬고 질주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음..(돌아오지는 못함^^) 자세나 몸에 힘빼는 것에 대한 개념은 완전이 없었음. 사직수영장 가면 근처 학교 중.고생 수영부 선수들이 연습할 때도 있었는데.. 거의 작은 배가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완전 신들이었다. 수영의 신(神).
수영에 대한 갈망과 열정으로 살고 있을때.. 정말인지.. 운명적인 일이 생긴다. 우리 동네에(반경 1km쯤을 우리동네라 칭함) 드디어 종합레포츠센터가 생겼다. 건물도 정말 컸다. 헬스장.수영장.목욕탕.태권도장 등등..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내가 고3이라 공부하느라 "두고보자 수능만 끝나면 내가 수영 제대로 배운다" 로 다짐의 다짐을 했다. 수영장까지는 자전거로 3분정도.. 가는 길은 다 내리막이라 엄청 빨리 갈 수 있다. 반대로 오는 길은 다 오르막이라.. 하체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긍정적 장점이 있다.^^ 그리하여 수능이 끝나고 10개월 가까이 쉬던 태권도장도 다시 갔는데.. 낯선 사범님이 계시길래 인사드리고.. 누구시냐고 물어보니 태권도관장님의 후배라고 했다. 배사범님이셨는데.. 태권도 실력은 별로인 것 같았다. 태권도를 좀 쉬셨다고 들었는데.. 하여간 나한테 많이 맞았던 걸로 기억된다. 누가 감히 수능 끝난 고3을 이길수 있을까? ^^.. 란 자만심을 1초만에 겸손으로 만든 사건은 배사범은 우리동네 수영장의 '수영강사'이셨다. "그래 태권도가 뭐가 중요해 사람만 좋으면 되지? ^^" 당시 배사범님은 수도권의 K대 체육교육과에 재학중이신데.. 병역문제로 휴학하고 새로 생긴 수영장에 잠시 강사로 오신 것이다. 집은 부산인데.. 태권도장에서 숙식하신 걸로 기억된다. 정말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나도 수능 끝나고 체대실기 준비해야 하는데 배사범님께서 정말 너무 좋은 값진 정보를 많이 주셨고 실기시험 연습도.. 밤에 많이 도와주셨다(체대실기 종목에 핸드볼 공던지기가 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당시에 나의 어깨는 황금어깨로 야구공은 거의 80-90m 이상 던지는데 핸드볼공은 어중간하게 잡히지가 않았다. 그러니 어떨때는 만점인 38m이상 날아가는데, 어떨때는 20m도 안날아가서 스트레스였다. 요령을 전혀 모르던 나에게 오공본드를 손가락에 살짝 묻히고 던지면 된다고 했다. 역시나 노란색 본드를 손가락에 조금 묻히니 핸드볼공은 춤을 추면서 멀리 날아갔다. 실기시험 당시 실기고사장에 가서 보니.. 나만의 정보가 거의 모두가 몰래몰래 본드를 손가락에 묻히고 헨드볼공을 던졌다.^^ 요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부정투구 단속.. 손에 왁스.타르 묻히는 행위가 갑자기 생각난다. 정보와 요령의 중요성을 정말 깊게 깨달았다).
또한 나의 수영이야기를 듣고.. 수능끝나고 시간 좀 많으니 바로 수영장 등록해서 수영 배우라고 하셔서.. 정말 열심히 수영을 배웠는데.. 그런 내가 기특한지.. 특훈까지 시켜주셨다. 특훈이란 수영장 직원들 다 퇴근한 밤 10시쯤.. 배사범은 수영장 열쇠를 가지고 계셨기에.. 밤10시부터 12시까지 거의 한달간.. 많이 배웠다. 나와 내 친구가 같이 배웠는데.. 내 친구는 수영에 큰 관심이 없는 친구라 대충대충.. 나는 재밌기도 해서 최선을 다 한 결과.. 딱 한달만에 접영.배영.평영.자유형 4가지 영법을 다 배웠다. 어느 정도 최소한의 기본은 있었지만.. 배사범님은 나의 수영실력 향상에 놀라움..을 표현? "참 빨리는다.. 빨리 늘어.."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수영장에 회원등록은 딱 한달만 했다. 그 후론 일일입장이나 부산쪽에 큰 수영장가서 연습하고 등.. 4가지 영법을 다 배워도 이제 시작인 것이다. 운전면허증 따면 운전할까?.. 도로는 험하고 험한 야생이기에..^^ 수영 또한 기나긴.. 자기발전을 위한 끝임없는 노력만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수영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 시점에 또한 운명적인 장소를 만난다.
고등학교 졸업후 20살때 여름 교회 수련회를 전라북도 장수로 갔다. 그때는 친구들이 많았다. 21살이 되니 친구 한.두명씩 군대에 입대했고 조금씩 나도 압박을 받을 시기에.. 여름 교회 수련회를 내 친구의 고향인 거제도로 갔다. 지명을 다 밝히겠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내 친구의 명복을 진심으로.. 다시 한번 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가 친구의 고향이다. 고등학교 친구인데.. 처음엔 친구의 친구였는데..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비슷한 점도 많고.. 친하게 되었다. 대금초등학교를 친구가 졸업했는데, 그후로 학생수가 감소하여 폐교가 되었으며 수련회 당시에는 무슨 야영장.. 수련장.. 이었다. 친구 섭이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 곳에서 21살의 '여름수련회'를 가졌다. 7월말쯤 이었고, 날씨가 정말 화창하다 못해 한마디로 선샤인 하였다. 내 인생에 다시 한번 그런 화창한 여름날과 여름날의 바다를 볼수 있을까? 정말 그런 화창함은 다시는 볼수가 없을 듯하다. 당시 찍은 많은 사진들이 있는데.. 지금은 없는지.. 못찾는지 모르겠다. 다시 찾아봐야겠다.
운명적인 장소는 섭이의 집에서는 대략 1.5km떨어진 곳.. 해변가에서는 대략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었다. 학섬이라고 불리는 그 섬은 교회 수련회 당시에도 날씨가 워낙 좋아..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섬은 둥그런 모양의 섬으로 학이 많이 놀러와서 '학섬'인지.. 또한 '각섬'인지.. 친구 섭이의 발음이 안좋아 아직도 의문이다. ^^ 구글 위성사진으로는 완전히 둥글지는 않아 보이는데.. 당시 육지에서 볼 때는 동그란 케익 같아 보였다. 그렇게 그 섬을 만났다. 운명은 단순한 이유이다. '학섬'까지 수영해서 가야지 이다. 섭이는 어릴적에 동네 형들 친구들과 학섬까지 수영한 적도 있다고 했다. 글쎄.. 최소 왕복 2.6km를.. 물살과 파도도 있는데.. 글쎄.. 의문이지만 믿는다.. 친구야^^
그렇게 학섬(한 20평~30평 정도의 섬?)을 알게 되었고, 학섬 주위로는 현재 거가대교의 도로가 지나가며, 대금리는 거가대교 연결도로가 관통을 한다. 나는 군입대와 제대.. 학교 복학 등등.. 기회만 되면 '학섬상륙'을 시도하였다. 1999년 7월 여름 대한적십자사 '수상인명구조원'자격을 취득한 후 수영에 대한 자신감이 탄력을 받았다. '수상인명구조원 자격시험'은 솔직히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지만.. 생각치가 워낙 높아서 인지는 모르겠다. 힘들긴 아주 힘들었다. 특히나 하루 교육이 끝나면 집에 와서 레포트(수영관련 보고서)를 작성해서 내일까지 제출하는 것도 힘들었고, 집에서 바로 가는 버스편이 없어 아침에 일찍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120-130명 정도가 응시를 했는데.. 첫날 교육의 인원수가 가장 많았고,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대략 10명 정도가 사라졌다. 선배님들에게 미리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점점 인원이 줄어드니 불안감과 함께 조교들의 레이더망도 좁아졌다. 쉽게 말해 요령이 점점 통하지가 않을 것 같은 느낌.. 제일 힘들었던 건 입영할때(5m 물속에서 떠있는.. 영법)무릎이 정말 아팠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8일차쯤되니 아휴.. 정말 힘들었다. 무릎에 붕대 등.. 감고 10일을 버텼다. 그래도 난 병원간다는 핑계대지 않고 10일을 풀(full)로 해냈다. 사실 처음에는 병원 간다는 것도 몰랐다. 아니 교육중에 병원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응시생들이 조교들과 얘기하고 3-4시간 후에 오길래 물어보니 병원갔다 왔다고 했다. 사실 병원간 것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 짱박힌 건지도.. 쩝.. 그 후 나도 많이 아프면 병원가야지 란..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버텼는데.. 결국 시간은 흘러가더라. 모든 자격교육이 끝나고 마지막날에 막걸리 집에 가서 다같이 뒤풀이를 했는데.. 그때 참 웃긴게 '신창원'이란 탈주범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신창원은 나의 군대생활.. 즉, 의경복무 때 탈옥을 해서 비상 걸리고.. 검문검색 강화지시 등 고생을 많이 했지.. ^^ 그리고 여름방학 끝나고 2학기 개강후.. 학기 말 12월쯤부터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시험'을 준비하여, 2000년 1월에 합격을 했다. 지금은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으로 변경 되었다. 이제 거의 모든 준비가 다되었다. 학섬아 기다려라..
1). 1차 학섬 상륙작전
2000년 여름이 되었다. 나의 수영실력은 자칭 거의 완벽했고, 수영 10km(?) 정도는 살짝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1999년 가을에 서울 '한국체대'에서 있었던 '전국대학수영대회'에도 참가했다. 수영 수업중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회참가를 권유하셨고 교수님 추천인데 거역 할 수 있나? 아..! 이리저리 바쁜데 또 저녁에 남아 수영장에서 연습하고 등등.. 지원은 하나도 없었던걸로 기억되는데 밥 한끼 사주셨나 모르겠네.. 우리는 전문선수가 아니기에 1부팀이 아닌 2부팀으로 참가하여.. 큰 성과는 없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거리에(자유형 800m 또는 1500m 차라리 5km, 10km 좋다 등 ^^) 강한데 2부팀은 대회시간상 단거리만 있었다. 단거리도 50m만 있었으며.. 또한 50m도 자유형이나 평형은 비교적 편한데, 편한 종목은 선배들이 다 참가하고 비교적 힘든 접영.배영50m 조금 힘들다. 수영 좀 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접영으로 50m 완주하기도 힘들고.. 완주 해봐라 죽는다 죽어.. ^^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인전 접영50m를 내가 출전하는데.. 접영은 태권도를 해서 그런지 발차기(돌핀킥&물 잡기.당김 등.. 조금 좋음)가 좋아 자신있는 종목이다. 근데 큰일이 생겼다. 개인전 접영50m 직후.. 바로 단체전 400m릴레이가 있다. 어떻게 경기일정이 짜졌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시간상.. 그렇게 되어 버렸다. 단체전 400m 릴레이는 접.배.평.자의 순서로 4명이 100m씩.. 내가 바로 100m 접영 1번 선수.. 첫주자였다. 큰일이다. 개인전 접영50m을 뛰고.. 잠시 후 또 접영100m을 뛰라고? 미친 짓이다. 중간에 죽을 수 있다.. ^^ 몰라 수영황제 펠프스도 잠시고민될듯한 상황.. 약간의 과장이 있지만.. 하여튼 상황이 정말 안좋아서 생각한 결론이.. 나를 따라 수영대회에 참가한 형이 있는데 학교는 같은 학교인데 전공이 기독교학과였다. 체육학과에 복수전공하는 형이다. 살짝 왜소한 편에 호리호리한 체격인데.. 어떻게 치열한 체육학과 복수전공에 성공했는지 모르겠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체육학과는 '올림픽 금메달'이 나온 나름 지방의 명문 체대였다^^) 수영수업하다가 만나서 친해졌는데.. 좋은 형이다. 당시 '기아자동차의 아벨라'란 승용차가 있었다. 난 아벨라 줘도 안탄다.. 못생겨서.. ㅎㅎ 수창이 형이 결국 나 대신 개인전 접영50m에 참가했다. 형을 설득하느라 정말 개고생했다. 수창이 형은 내가 꼬셔서 수영대회에 참가했다. 수영수업은 내가 교수님의 감독하에 수업시간에 도우미를 많이 한다. 쉽게 말해 나와 몇명 학우들이(자격증 있는 학우 위주)수업을 진행하며, 교수님은 수업끝날 때 쯤 오셔서 "잘하고 있지.. 하시며, 출석만 부르고 가신다.. ^^ 나는 수영과목 수영1, 수영2, 수영3, 수영4가 있는데 4학기 모두 A+를 받았다. 학점은 겨우 1학점이다. 3학점쯤 되면 좋은데.. 수창이 형은 기독교학과 복수전공이라 학점이 좋아야 복수전공학위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 체대생들은 복수전공 별로 안좋아한다. 왕따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우리는 나름대로 필기.실기 등 치열히 경쟁을 하며 입학했는데.. 복수전공은 타과로 입학해서 체육학 학위를 받으면.. 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 된다. 또한 체대생들은 학교 생활이 엄청 힘들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나는 대학 1학년, 2학년 동안 학생식당에서 젓가락을 쓰지 못했다. 3학년쯤 돼야 젓가락 사용을 할 수 있다. 선배들이 건방지다고 못쓰게 한다. 동기들중 한명이라도 젓가락 써봐라 그날은 체육전공 다 집합이다. 체육관에 집합해서 학번대로.. 난리난다. 난리 나.. ^^ 이야기가 딴데로 갔네.. 수창이 형은 수영을 조금 하는 편이였는데.. 그래도 조금 부족했다. 또한 나한테 조금 잘 보이면 최소한 A학점은 확보아닌가? 교수님들께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복수전공 학생들에게는 학점이 짜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15-20년전 이야기다. 내가 수영대회 참가 결정했을 때 제일 먼저 한게 수창이 형 꼬시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차가 있으니.. '아벨라'지만 당시엔.. 제법 좋은 차 아닌가? 수영연습 밤10시에.. 늦게 끝나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줘야지.. 체육전공 중에 내가 형한테 제일 잘 대해 줬는 것 같다. 티 안나게.. 티 나면 나도 선배들에게 작살나니깐? 또한 형이 기독교학과 아닌가? 나중에 대학원가서 목사님 될 수도 있으니.. 나도 교회 좀 다녔으니.. 수창이 형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
수창이 형이 나 대신 접영50m을 뛰었다. 내가 응원차 옆에서 봤는데 25m까지는 선두권이었는데.. 40m 이후론 급 체력저하로 꼴등 앞에 들어온 듯하다. 그 날이 수창이 형의 접영 역사상 50m 완주를 처음 한 날이었다. 설득할 때도 "야.. 나는 접영50m를 뛰어본 적이 없어" 라고 하길래.. "수창이형 할 수 있어.. 사람은 급하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등등.. 하나님 어쩌구 등등.. 내가 기도 할게 등등.. 설득하느라 힘들었다. 대회 후 당시 판매한지 얼마 안되는 '참이슬'을 내가 사주었다. 기독교학과 수창이 형은 '참이슬'을 참 좋아했다.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렇게 좋은 경험으로 대회를 무사히 마쳤다.
2000년 1학기 기말고사 후.. "친구야.. 섭아 이제 때가 왔다.. 준비해라" 란 통화와 함께 나는 거제도로 향했다. 거의 5년간 섭이와 통화하면 '학섬정복'을 주로 얘기했으니.. 섭이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여름방학은 겨울방학보다는 짧기에.. 단시간 학섬을 정복하고.. 수영장 알바나 태권도 알바를 계획중이었다. 거제도에 도착하니 날씨가 참 좋았다. 섭이와 만나후 저녁에 섭이 동네 친구의 횟집에서 가볍게 한잔 하고.. 섭이 친구인 칠봉(세월이 많이 흘러.. 본명인지 아닌지 기억이 안난다. 가명이라고 칠봉이 인데 본명이면 큰일인데..^^)이는 내 얘기를 많이 들었는지.. 살짝 똘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응원도 해주었다. 칠봉이는 향후 나의 '수영군단'의 목숨을 살리는 소중한 분.. 소중한 친구이다. 그 날은 섭이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잠을 제대로 못잤다. 대망의 학섬정복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잠이 잘 오지 않았던 것 같다. 눈을 뜨니 아침 7시쯤.. 근데 밖의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일기예보를 꼼꼼히 확인한 후 날을 잡아 거제도에 왔는데.. 역시 바다 날씨는 알 수가 없다. 작은 태풍이 부는 것 같은 바람.. 비는 조금 내리지만 바람이 문제였다. 바람은 곧 파도를 의미한다. 학섬정복은 오후로 미뤄졌지만 오후엔 좀 더 심했다. 일단 수영복 등 장비를 준비한 다음 바닷가로 갔다. 바다에 허리까지 들어가니 파도가 심했다. 배가 다닌다면 조금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수영을 해서 파도와 물살을 헤치고 직선거리 2.6km를 갈 수 있을까? 단독으로? 답은 '하지마라' 이다. 내심 어디서 고깃배 하나를 빌려서.. '제 옆에 따라만 와 주세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전혀 계획에 없는 일이라.. 또 오늘이 지나면 내일을 기약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장마의 영향으로 '기상청 직원들 체육대회에도 비가 온다'는 최고의 일기예보 의 시대 아닌가? 엄청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섭이 어머니의 말씀.. "멀리서 쓸데없는 짓 하러 뭐하러 왔노?" 네.. 죄송합니다. 1차 학섬 상륙작전 실패..
2). 2차 학섬 상륙작전
1년을 기다렸다. 내 인생에 꼭 학섬에 수영으로 가고야 만다. 작년의 실패를 교훈삼아 2001년 봄부터 섭이와 친밀한 교감을 나누며, 7월을 계획했다. 당시 섭이는 거제 옥포 조선소인가? 하여튼 삼성중공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며, 돈도 좀 버는 것 같았다. 나는 수영의 권태기로 더이상의 발전도.. 퇴보도 없는 대학생이었고, 친구가 영국 본머스에 갔다고 했나? 간다고 했나.. 이쯤부터 본머스를 들었던 것 같다. 드디어 기말고사를 마치고 7월이다. 장마도 거의 끝났다. 기상청의 슈퍼 컴퓨터가 더 좋아졌기를 바란다. "섭아 또 7월이다. 이번에 단단히 준비하자".. "그래 빨리 와라. 내가 배도 사놨다.. 3인승이다.." 섭이가 배를 샀다는 말에 감동을 먹었다. 대기업 다니더니 배도 샀네.. 나를 위해서.. 고맙다. 친구야.. ^^ 많은 통화를 한 후.. 난 또 거제로 향했다. 토요일이었고.. 쉬는 날이라 섭이가 버스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왔다. 처음부터 느낌은 살아있었다~ 올해 7월은 작년과는 다르다고 나만의 '마인드컨트롤'로 마음을 잡아나갔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뭐 내가 '에베레스트' 등정하는 것도 아니고.. K2봉.. 안나푸르나..도 아니다. 동네 앞바다 학섬까지만.. 2-3시간만 날씨를 허락해 주소서.. 섭이는 나를 위해 자신의 친구인 초등학교까지 수영선수를 했다고.. 살짝 믿음이 가진 않았지만.. 나한테는 같이 동행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으니 정말정말.. 든든했다. 그 때 학섬까지 갈 거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봤어야 했는데.. 초면이라 어색했다. ^^
이제 동행할 친구도 생겼고 섭이의 배도 있고.. 배.. 그 배가 말이다. 그냥 동네 개울에서 노는 배다. 5만원짜리.. 3인승 노젓는 배.. 쉣.. ^^
이상하게 꼬여간다. 2001년 7월.. 올해도 학섬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가? 그래도 감사하다. 배 한대가.. 든든한 친구가 있는 배 한대가 나를 호위하며 따라온다면 얼마나 든든한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라고 다짐.. 등등. 학섬상륙은 내일이다. 그 날은 최종 연습으로 바다에 배띄우고.. 나, 섭이, 수영친구, 칠봉이(1차 상륙에 등장. 횟집 운영/섭이 친구.. 칠봉이는 3차 상륙까지 나온다)이렇게 4명이서 내일의 상륙작전에 최종연습을 시작하였다. 내일의 계획은 나와 수영친구는 학섬상륙후 돌아온다. 섭이와 칠봉이는 배에 타고 노를 저으면서 우리 옆에서 보호한다.. 이다. 단순하다. 최종연습은 완벽했다. 수영친구는 초등학교 이후 수영을 거의 안했는데.. 학섬간다는 말에 몇일 연습했다고 한다. 아..!! 수영친구 나보다 키도 크며 듬직한데.. 2% 부족한.. 뭔가.. 진짜 세친구들 어릴때 학섬 가본적 있는지 모르겠다. 섭이와 칠봉이는 그 동네 친구라 분명히 수영으로 학섬갔다고 들었는데.. 수영친구는 다른동네 친구라 바다수영 경험 자체가 없다고 한다. 불안한데..섭이와 칠봉이는 해병대처럼 늠름하게 배의 노를 리듬에 맞춰가면서 연습을 잘 했다. 정말 진지했다. 아 근데 5만원 짜리 배가 물살과 파도를 이기지 못 할 것 느낌적인 느낌.. 모르겠다. 이제 실전이다. 그렇게 저녁에 칠봉이의 횟집에 모여 작년과 같이 간단하면서도 대단한 결의를.. 내일의 성공을 다졌다. 다음날 아침 날씨는 완벽했다. 솔직히 '2차 학섬 상륙작전'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언제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후가 맞을 것이다? 오전에 천천히 준비하고 점심밥 든든히 먹고 칠봉이 횟짐에서 배를 꺼내고 등등.. 우리들은 해변으로 갔다. 해변에 도착하니 어제 있던 누군가의 텐트가 그대로 있었고 우린 그 옆에서.. 우리도 텐트하나 칠걸하고 후회했다. 옷을 벗고 갈아입어야 하는데.. 섭이 집이 직선거리 50m밖에 되지않아 텐트를 간과하였다. 그냥 해변 모래사장에 옷과 불필요한 장비들을 두고.. 우리는 2차 학섬 상륙작전을 실시하였다.
아.. 아.. 2차 학섬 상륙작전의 바보(^^)들인 거제도 세친구들은 작전 개시 5분 만에 사라졌다. 정확히는 배를 탄 섭이와 칠봉이는 물살과 파도에 점점 휩쓸려.. 학섬이 12시 방향이라면.. 9시방향으로 점점 떠내려갔다. 처음 5분은 나의 옆에.. 또는 조금 앞에서 리드하였지만.. 결국 5만원짜리 배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했고.. 수영친구는 또한 5분 정도 나의 앞에서 수영를 과시하다.. 급 체력저하로 9시 방향으로 떠내려가던 배를 쫓아 갔다. 다행히 간신히 배를 잡았고 그들은 3시간 후 나타난다. 지금도 욕 나온다. 내가 수영친구에게 수도 없이 말을 했다. 힘 빼고 부드럽게 물결을 타면서 수영하자고.. 같이 가면 정말 든든한데.. 처음부터 혼자했으면 차라리 좋았을건데.. 함께하자고 한 바보 세친구가 있다 사라지니.. 사라졌다.. 분명히.. 나 또한 낯선 바다에서 초반에 무섭고 두려웠다. 물, 초코렛, 바나나, 사진기, 신발 등.. 비상 식량도 다 배에 있는데.. 와.. 진짜 우짜라고?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엔 두려움이 확 밀려왔다. 주위에 배들도 많았지만 전부 먼 바다에 떠있었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되는지 보이기나 하겠나? 친구들은 저 멀리 떠내려가서 보이지 않은지 오래됐고.. 동네의 우물에서 타는 배에 장정 3명이 타고 있으니 그 배가 추진력이 생길까? 원하는 방향으로 나갈까? 나중에 노가 부러졌다고 들었다. 살라고 노는 억수로 저었나 보다.. 바보 친구들.. 굿바이 ^^
바다물속에 있으면 방향감각이다 거리감이 없다. 물살이 3시 방향에서 9시 방향으로 흐르기에 목표인 학섬은 12시 방향.. 그럼 난 직선거리로 수영을 할 수가 없다. 직선으로 하면 계속 9시 방향으로 떠내려간다. 다행히 9시 방향은 육지이며, 예전에 21살때 '교회여름수련회'를 온 '대금초등학교' 빙향이라 먼 바다로 떠내려갈 일은 없어 불행중.. 천만다행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수영하던 중 바보 세친구가 없다는 걸 알았고.. 선택의 순간.. 나를 학섬으로 이끈 건.. 날씨였다. 꼭 21살 7월 여름의 날씨 같았다. 너무 맑고 화창하고 절대 불길한 일이 생길것 같지 않은 날씨.. 모르겠다. 학섬은 나한테 너만 오라고 했을지도.. 저 바보들.. 또한 거제 사람들은 저기서.. 배에서 놀게 하고.. 너만 잠시 왔다 가라고.. 하는 무언의 허락.. ^^ 나는 학섬이 있는 12시 방향이 아닌 3시 방향쪽으로 천천히 수영하였다. 물살을 어느정도 받으면서 수영해야지 떠내려가지 않고 조금 멀더라고 학섬에 도착할 수 았을 것 같았다. 바다수영을 하면 물고기, 해파리, 해초류, 바다 쓰레기 등등.. 많은 공포의 물질들이 나를 괴롭혔다. 특히 해파리는 조금 위험했다. 2/3쯤 가서 바다에 떠서 방향도 잡을 겸 쉬고 있는데.. 낚시인들이 탄 고깃배가 지나다 잠시 서더니 "육지해서 수영으로 이 곳까지 왔어요" 라고 물어보길래.. 아주 여유있게 " 네.." 라고 대답했다. 사실 태워드릴까요? 라고 물어보면 돈 1000만원 이라도 주고 타고 싶었다. 진짜다. 내 이름 걸고.. 타고 싶었다. 근데 그 사람들 "어디까지 가세요?" 라고 또 묻길래.. "저 섬 한바퀴 돌까 합니다" 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최후의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좋아하는 한마디 "화이팅".. 그리고 '엄지척..'

저 넘의(?) 엄지손가락을 부술 수만 있다면.. 아.. 진정 가시렵니까? 갔다..
그 후 그런 배가 1대 더 와서.. 내 옆을 비교적 안전하게 스쳐지나 가면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봤다. 내가 무슨 '박태환 급'이나 되는지 아는 감? 방법이 없다 친구들을 원망한들 이미 늦었고.. 배도 조금씩 고파오고.. 용감하게 헤엄칠 수 밖에.. 그렇게 약간의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믿을 건 나의 수영실력 뿐.. 시계도 없었기에 대략 1시간 정도 단독 수영으로 학섬에 도착했다. 근데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라서.. 사실 학섬을 한바퀴 돌고 바로 출발할까 했는데.. 상륙작전이니 상륙을 했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학섬은 조개나 굴껍질 등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신발도 없는 상태에서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땅을 밟으니 바로 엄지발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피곤하다.. ^^


'라이프&호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본머스 태권도 20대 그리고-3 (0) | 2024.07.08 |
---|---|
나와 수영-2 (0) | 2024.07.08 |
영국본머스 태권도 20대 그리고-2 (0) | 2024.07.08 |
영국본머스 태권도 20대 그리고-1 (0) | 2024.07.08 |
근로장려금 & 자녀장려금 기한 후 신청하기 (0) | 2024.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