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호프

나와 피아노

by go1700 2024. 7. 9.
반응형

1. 나와 피아노

1). 나와 시리즈의 첫 스타트는 '피아노'이다.

 

추후 '나와 서쪽', '나와 색소폰', '나와 금바다', '나와 프리템포'.. 등등 한 번 써봐야 겠다.

어릴적 자아의식이 깨어나기 전.. 만 5-6세 정도 부터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워낙 오래 되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직업군인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정말 제주도 빼고 대한민국 팔도에서 다 살아본 것 같다. 서울, 김포, 부천, 원주, 괴산, 영동, 보은, 광주, 부산.. 등등. 충북 영동은 내가 영동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출신인데.. 중퇴 하였다.^^

​이사 가느라 '유치원 중퇴자' 이다. 아직 기억난다. 유치원 친구들이 일렬로 줄을 선 다음.. 내가 한명씩 악수와 작별을 고한 뒤 출입문을 나가 큰 트럭에 올라타서 떠나는 때를.. 뭔 영화도 아니고.. 집안의 유일한 유치원 중퇴자.. 썩 나쁘지만은 않다.

​언제 어디서 처음 피아노를 배웠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충북 보은' 같다. 교회에서 배운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없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고향인 이 곳 금바다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피아노 인생'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전부터 피아노학원.. 학원이라기 보다는 어떤 오래된 툇마루가 있는 집의 방에 피아노가 2대 있었고.. 선생님은 결혼전 아가씨 같았는데.. 지역의 큰 교회에서 반주를 맡고 계시던 선생님이셨다. 왜냐하면 선생님과 일요일마다 걸어서 교회에 간 기억이 있고.. 교회 피아노가 있는 곳 옆에 항상 날 앉힌 뒤 선생님은 예배반주를 한 기억이 난다. 예배가 끝나면 항상 나에게 먼저 초코파이와 야쿠르트를 주셨지..^^

​그 피아노학원은 아버지의 사무실 옆에 있었는데.. 당시 아버지께서는 예비군동대장(예비역 대위/5급 사무관급)으로 지역에서 근무하고 계셨고, 그 학원 건물(방)을 우리 부모님이 소개한 것으로 기억된다. 살짝 몽환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아직도 이상한게 피아노학원을 다닌 학생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 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 나는데.. 모르겠다. 시간이 다를 수도 있으니..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1학년인데도 도시락를 들고 다녔는데, 학교 마친후 피아노학원에서 점심 도시락 먹고, 피아노를 배우고, 집에 오는 나의 감옥 아닌.. 감옥 같은 생활이였다. 나의 점심 도시락의 '분홍소세지 반찬'을 선생님이 맛있다고 몇개 드신 걸 똑똑히 기억한다. ^^ 정말 피아노학원 다니기 싫었다. 한 몇달 정도만 다니다가 끝냈어야 하는데.. 초등학교 내내.. 중학교 입학을 핑계로 겨우 해방을.. ^^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와 협박(^^)으로 시작한 피아노는 아버지만의 이유가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969년인가 1970년인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육군중위 때 월남전 파병을 가셨다. 맹호부대 소대장으로.. 어릴적 월남전 이야기도 많이 들어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한국군은 정말 용감했고 최강의 전투력이였다. 미군은 화력이 좋을 뿐이지.. 특유의 건방짐.자만심으로 전사자가 많았으며, 전투중 한국군을 만나면 그렇게 좋아했으며, 두 발 뻗고 편하게 잤다고 들었다. 아버지도 위험한 작전이나 위급상황도 많았다고 들었다. 생사의 전투에서 내가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적을 죽일 수 밖에.. 아주 단순한 계산이다. 그렇게 전쟁에서 공을 세워 훈장도 받으시고.. 지금은 '국가유공자'이시다.

​다행히 건강하게 귀국선인 미국 수송함에 타신 후.. 부산으로 귀국하셨는데.. 귀국선에 있던 피아노로 인하여 나의 피아노 인생이 시작되었다. 귀국선인 미국 수송함은 거의 항공모함급으로 엄청나게 컸는데 그 곳은 일반 병사들은 1층 사용.. 하(부)사관급은 2층 사용.. 장교들은 3층 이상 사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장교들이 사용하는 3층에는 큰 뷔페식당이 있었는데.. 음식의 질이나 종류나 어마어마하게 풍족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형과 나에게 군대는 무조건 장교로 가야한다고 세뇌를 받는 상태였다. 형은 ROTC 대위 출신이지만.. 난 원래 말 안듣는다. 대한민국 의무경찰.. 병장 출신..^^

​3층의 뷔페식당 한 구석에 문제의 피아노 한대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군 장교들이 그 시대에 누가 피아노를 쳤겠나?

먹고 살기도 바쁜 시절에 피아노는 사치중에 사치였겠지.. 근데 한 흑인 군인(장교는 아니고 뷔페 관리 미군병사 정도^^)이 피아노를 치는데 정말 아름답고 흥에 겨운 선율로 연주를 멋지했다고 했다. 그 후 아버지는 결심하셨다고.. 나도 자식을 낳으면 피아노는 꼭 배우게 한다고..(아니 아버지..그냥 아버지께서 배우시지요. 당시 20대 중.후반 이셨는데.. 충분히 시간 많잖아요.. 왜 날..^^) 이것이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한 스토리이다. 감사합니다.. 쩝.. --;;

​어린 나는.. 어떻게 하면 피아노학원 안 다닐까..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는 피아노를 빼지.. 란 생각들의 갈등속에서 거의 초등학교 생활을 한 건 같다. 살짝 과장은 있다.^^ 어떻게하여 아버지 사무실 옆에 있던 작은 피아노학원이 없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어느날.. 그 학원은 없어지고 난 잠시 한.두달 해방되었는데.. 오마이갓.. 우리동네에 당시엔 거의 초대형 기업형 피아노학원이 들어왔다. 음대를 졸업하신 원장님 부부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이..

​기업형 D피아노 학원에서.. 나는 그래도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다. 당시엔 몰랐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안정적이라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던 것 같다. 또한 집도 새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70평의 단독주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군인가족에게만 분양하는 군인주택이다. 아직도 부모님이 그 군인주택에게 거주하시는데 지금은 그냥 오래된 주택이 되어 버렸다.

​때론 배 부른지 모른체 피아노학원 안 갈 생각만 하던 나를 반성할때도 있었지만, 당시엔 남학생이 피아노 배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학교 가면 놀림 받을 때도 많았고.. 한 참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있는데 학원 갈 시간 되면 가야하는 나의 신세도 불쌍했다. 피아노학원이 확장이전 할 때를 틈타.. 몇 번이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여지없이 부모님께 잡혀서 다시 다니고. 이런.. 나중엔 피아노 좀 쳤다고.. 전국규모 피아노대회에 까지 나갔다. 일명 콩쿠르..다.

​당시 학교 마치고 바로 피아노학원 가서 3-4시간 연습하고.. 약 두 달정도 대회 준비했지.. 곡 선정하고.. 곡을 다 외워야 했다. 물론 오랫동안 배웠으니.. 매일매일 하다 보니.. 적응되어 지루함이 조금 덜 했지만.. 괴로웠다. ^^ 결국엔 우리 부모님이 사고를 치셨다. 어느날 학교 마치고 집에 오니.. 내방에 피아노학원 원장님이 계셨고.. 이상한 아저씨들과.. 또한 당시 최신식 국산 피아노도 있었다. 이런.. 쉣...^^ 당시 150만원 하던 '대우로얄피아노' TV 광고가 아직도 기억난다. 나보고 죽으란 말인가? 난 태권도 하던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는데.. 그 후 난 동물원의 뭐 처럼.. 부모님이 거실에서 차 마시고 계시면 나는 내방의 피아노를 부모님을 위하여 몇번 연주했던 것 같다. 만족 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선하다.^^ 완번 빼박이다.. 우리 군인주택 13가구중에 피아노 있는 집은 우리집에 유일했으며, 동네 아줌마들이 놀러 와서 구경하고 등등.. 와 미치겠다. 구경오시면 또 부모님의 자랑인 내가 한 곡 연주해 줘야 하지 않나? 빼박이 확실하다^^

​뭐 내방에 피아노가 있으니.. 사실 우리방이지. 형과 같이 쓰는 방.. 형은 일찍감치 공부를 잘하여.. 피아노의 저주에서 풀려났다. 억지로 피아노학원 다니던 나를 위로는 커녕.. 자기한테 불똥 튈까봐 "동생넘의 시끼야! 열심히 해라 괜히 나한테 불똥 튀면 죽는다"는 협박을 진짜로 많이 했다. 당시엔 형도 학원 좀 다녀 왠만한 사람보다 피아노를 조금 쳤다. 그렇게 내방의 피아노와 친해졌으며 '부산 피아노 콩쿠르(전국대회급)'에서 최우상을 받았다. ^^

​이 대회는 초등부(중.고등부 이상은 모르겠음)에서만 각 학년마다 약 100명 정도 참가했는데, 1박2일 동안 엄청 기다렸다. 또한 두달정도 연습하여 나갔더니 심사위원분들.. 짜증난다. 한 사람당 15초(내 참가곡은 3분30초 이다) 정도만 들어보고.. 다음 참가자 나오세요.. 이런 식이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초등부만 600명이 넘는데.. 완곡을 다들으면 시간이 부족 할 것이다. 하지만 두달간 연습한 참가자들은 뭐가 되나? 또한 우리집은 150만원 주고 피아노도 샀다니까.. --;

​내가 연주한 곡도 당시 '소나티네' 몇 번 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지금도 음율은 기억에 넘쳐 난다. 당시 빡세게 연습했다.
고생끝에 내가 속한 학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정말 스스로에게 칭찬을 많이 했다.. 쏴라있네.. ^^
근데.. 최우수상이 제일 잘한 상 아닌가요? 최우수.. 잖아.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최우수상 위에.. '동상'이 있다. 그 위에 '은상'이 있다. 또한 그 위에 '금상'이 있다. 뭐.. 올림픽 하냐..? 금, 은, 동.. 또 또한 그 위에 영예로운 '대상'이 있었다. 결국 알고 보면 난 5등 이다. 100여명 중 5등 정도면.. 사실 최상위급 아닌가? ^^

​같이 대회에 참가한 우리 학원생들(6-7명 참가) 중 '대상'이 한명 나올 뻔 했는데.. 나보다 2살 어린 여학생이였는데.. 중요한 건 나와 참가곡이 같았다. 쉣.. 그래서 학원에서 연습할 때 비교를 많이 당했다. 나이도 많으면서 왜 못치냐고? 모르지 난 억지로 하는 거고.. 승희(가명)는 좋아서 하겠지. 사실 2살 동생이지만 내가 봐도 피아노 실력이 보통이 아니였다. 대회전부터 학년부 우승 후보였는데.. '대상수상자' 최종 동점까지 가서.. 재연주 했었다고 기억되는데.. 거기서 아깝게 '금상'으로 밀려났다. 내 생각에 당시 피아노계의 정치적인(계보.라인)요소가 작동하지 않았겠는가.. 하다. ^^

​시간이 지나서 그 해 연말 'D피아노학원 문하생 연주회' 란 타이틀로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연주하는 행사를 끝으로 나는 피아노 학원을 접었다. 접고 바로 태권도 배우로 갔는데.. 피아노와 태권도를 한동안 같이 했었다고 기억된다. 태권도장이 피아노학원과는 불행히도 50M정도 밖에 안떨어져 있어.. 동네가 좁다.. 조심조심 몰래몰래 다녔던 기억도 난다. 피아노를 그만둔 후.. 한 20살쯤 부터.. 아 그때가 행복 했구나..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후회가 밀려 온 적도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하늘을 나는듯한 기분이었다.

​결론적으로 '나와 피아노'는 악연이 아닌 정말 '좋은 인연'이었다고 확신한다. 어릴때 배운 뭔가는 어른이 되어도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어릴때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된다. 어릴적에 배운 피아노란 악기의 박자와 리듬감은 태권도를 할 때나 운동을 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며.. 그 자체이다. 나도 나의 어린남매들에게 조금씩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아빠 피아노 잘 쳐?" 물어보면.. "당연히 잘치지.. 아빤 콩쿠르 최우수상 출신이야" 라고 대답한다. "아빠 한 번 쳐 봐" 라고 하면 .. "안돼요.. 콩쿠르 출신은 함부로 피아노를 치면 안되는거야.. 고수란 항상 겸손해야 하거든.." 쩝.. --;;

​예전에 교회 다닐 때.. 당연히 피아노가 있길래.. 손이 많이 굳었지만.. 이젠 실력이 완전 바보지만.. 잠시 아는 곡을 연주 해봤는데.. 그걸 보던 반주담당 집사님이 하셨던 말씀으로 잠시 뿌듯하기도 했다. "와우.. 자세가 참 좋네요.. 손 모양도 예쁘고.. 우린 손 모양 그렇게 안나오는데.. 전에 피아노 좀 쳤다고 들었는데.. 아직 살아있네요" ..쩝.. --;;

​문득 생각난건데.. 예전에 우리집에 있던 피아노 '대우로얄피아노'를 내가 태권도장 할 때.. 들고 가서 도장에 있었는데.. 그 태권도장 건물이 예식장 건물이라.. 예식장에서 팔라고 해서 그 때 50만원 주고 팔았다.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가져와야겠다. 물론 항상 나의 방안에 언제나 피아노가 있다. '디지털 피아노'를 말한다. 가볍고 다양한 악기연주를 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 나의 어린 남매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 비록 기초 수준이지만.. 할아버지의 월남전 이야기를 한다. 우리 가족이 피아노를 만난 역사적인 상황을..

객석 음악 콩쿠르

 

이 사진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진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몇 장 더 있었는데 찾아봐도 없네..

흠.. 15초간의 연주.. 난 후반이 좋은데.. 완주했으면 내가 완전 '대상' 인데.. 다음 생을 기약한다. ^^


*. 주의사항
수 많은 오타 있음. 문장력&필력 완전 딸림. 쓸데없는 말 많음. 은근히 지 자랑도 함.
그 밖의 많은 문제들 있습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