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79

역사학 - 일제강점기 1. 역사학 - 일제강점기 1).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일제의 강제노역으로 이른바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한국인 노동력이 착취되었고, 학도 지원병, 징병제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또, 젊은 여성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하여 군수 공장 등에서 혹사했으며, 그중 일부는 전선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의 명목 아래 성노예로 삼는 만행을 저질렀다. 30년대의 독립운동의 중심점은 김원봉과 김규식이 주도하는 조선민족혁명당이었다. 이후 김원봉과 김규식, 그리고 민족혁명당 산하의 조선의용대 일부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한편 침체하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 활동은 김구를 중심으로 한인 애국단의 활약으로 다시 살아나기 위해 시작했다. 애국단의 일원이었던 이봉창, 윤봉길.. 2024. 6. 5.
역사학 - 조선 말기 1. 역사학 - 조선 말기 1).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은 프랑스와 미국의 통상강요를 물리치고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유지하였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여흥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외정책이 개방되었다. 이어 1876년 2월 27일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였으며, 이후 미국 등 서구 열강들과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1882년에는 구식 군인의 차별 대우에 따른 저항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는가 하면, 1884년 12월 4일에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 개화파가 중심이 되어 개화 정권을 수립하려는 시도인 갑신정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갑신정변은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사상을 반영하였으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무너졌으며,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조정.. 2024. 6. 5.
역사학 - 조선 전기 중기 후기 1. 역사학 - 조선 전기 중기 후기 1). 조선 전기 중기 후기  영조의 강력한 탕평 정치로 인해 왕권이 강화되고 붕당정치의 힘은 약화하였다. 영조의 이러한 노력으로 탕평 정치는 그의 손자인 정조에게로 이어진다. 정조는 영조의 탕평 정치 의지를 받들어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또한 규장각을 붕당의 비대화를 막고 임금의 권력과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 기구로 육성하였으며,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가운데 능력 있는 자들을 재교육시키는 초계문신 계를 시행하였다. 1800년 8월 18일 정조가 갑작스럽게 서거하고 그의 어린 아들 순조가 즉위하자, 순조의 장인 김조순이 정권을 장악하여 안동 김씨 집안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이후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 세력.. 2024. 6. 5.
역사학 - 고려 조선 1. 역사학 - 고려 조선 1). 고려 원의 간섭기 동안 고려는 몽골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었으며, 또한 새로이 등장한 권문세족은 불법 행위로 사회 모순을 격화시켜 고려의 정치는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원이 점차 쇠퇴할 즈음 즉위한 공민왕의 개혁으로 대외적으로는 반원 정치, 대내적으로는 권문세가의 억압과 신진 사대부 계층의 성장 기반 마련이라는 두 가지 정책이 채택되었다.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이 시해되는 등 공민왕 때의 개혁 노력이 실패하자 정치 기강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는 등 고려 사회의 모순은 더욱 심화하였다. 여기에 왜구와 홍건적 등의 침입으로 고려 사회는 더욱 피폐해지게 되었다. 왜구와 홍건적을 진압하면서 성장한 신흥 무인 세력의 이성계는 정도전을 위시한 신흥 사대부들.. 2024. 6. 5.